■ 책소개
“오늘날 우리의 혁명이란 무엇인가?”
도산 안창호가 벼려낸 변혁의 정신을 오늘 다시 읽는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19권 『안창호: 민족혁명의 이정표』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핵심적 지도자이자 탁월한 사상가였던 도산 안창호의 논설과 연설을 모은 책이다. 주로 연단에서 대중을 상대로 자주독립의 사자후를 터뜨리던 그였기에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할 기회를 갖진 못했고, 그렇기에 안창호 특유의 혁명론이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적었다. 그렇다보니 안창호의 일면, 즉 독립운동의 조직가이면서 노선 갈등의 조정자로만 칭송받거나, 남한과 북한으로부터는 각각 준비론자와 민족개량주의자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 책을 통해 안창호가 하나의 주의, 주장에 얽매이지 않고 계급, 이념, 노선을 두루 섭렵하며 중도 통합을 지향했음을 다채로운 산문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안창호는 당시 태동하던 동아시아 근대 자본주의를 목도하면서 민족과 근대성, 독립과 혁명 등의 여러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맞닥뜨린 현실을 바탕으로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하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했다. 이에 안창호는 단지 각계각층의 일시적인 단합이 아니라 민족혁명이라는 기치 아래에 대공주의(大公主義)를 펼치고자 했고, 이는 오늘날 ‘변혁적 중도’로 연면히 계승되고 있다.
■ 상세이미지
■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변혁적 중도의 길: 도산 사상의 현재성
핵심저작
1장 독립전쟁의 길: 을사조약 이후 1차대전 종전까지
절망을 이기고 선전포고를 준비하자 │ 도덕과 지식이라는 두 날개 │ 미래의 을지문덕을 기다리며 │ 어제의 망국인은 오늘부터 나라를 회복할 자 │ 건전한 개인주의는 인류 행복의 기초 │ 국민회는 무형의 정부 │ 오직 내 힘과 우리의 힘으로 │ 지금 갖지 못한 것을 낙심치 마시오 │ 전쟁 종결과 우리의 할 일
2장 문명 개조의 대세와 우리의 할 일: 3·1운동 이후 임시정부 재임기
재산과 생명을 바쳐 독립을 완성하자 │ 한국 여자의 지위와 역할 │ 독립운동 방침 │ 문명 개조의 대세 │ 무엇이 참된 기독교인의 사랑인가 │ 방황하지 말고 전진합시다 │ 우리 국민이 단정코 실행할 6대사 │ 혈전의 시기는 그 준비를 완성하는 날 │ 독립운동에서 민간의 의무
3장 대공주의의 이상: 국민대표회 조직에서 민족통일당 운동까지
독립운동의 진행책과 시국문제의 해결방침 │ 자치할 능력과 독립할 자격 │ 국민대표회를 지지하자 │ 보편적 실력과 특수한 실력 │ 과거 민족운동의 반성과 인권 존중 │ 국내 동포에게 드림 │ 죽는 날까지 희망을 갖고 일합시다 │ 장래의 선량한 중견을 예비하는 동맹수련 │ 우리 혁명운동과 임시정부 문제 │ 민족적 해방과 계급적 해방을 아우르는 통일당 │ 민중의 선각자
안창호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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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서평
이제 안창호의 진면모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
안창호는 1878년 평안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유학을 배우고 2년가량 신학문을 익혔다. 이때의 경험은 그가 사물의 이치와 근본을 따지는 습관을 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과 중국 사상가 양계초의 책을 토대로 세계관을 정립한 그는 당대 조선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즉 안창호의 “최고의 스승은 당대의 구체적 현실과 정세”(20면)였던 것이다. 그는 개화파이면서 기독교도였는데, 그가 민족혁명의 핵심적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갑신정변이 아닌 동학농민혁명을 첫손으로 꼽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마디로 그는 “개벽을 향해 열린 개화파”(22면)였는데, 그가 일상에서 동학의 수련을 연상하게 하는 수양을 강조했고, 동학의 평등주의와 인본주의에 공감했으며, 한반도 신종교에 두루 열려 있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뒷받침한다.
평생 실속과 실천을 강조한 이답게, 안창호는 독립운동 기간 내내 탁월한 재정 실무자로 “자립에 기초한 물적 토대의 확충”(24면)을 중요시했다. 다음과 같은 연설 속에 담긴 경제관념을 보자. “임시정부가 한 일이 무엇이오? 동아시아에 있는 이가 한 일이 무엇이오? 재정 모집과 시위운동을 계속한 것이외다. 이것으로 외교와 전쟁과 모든 것이 될 것이오. 내가 며칠 후에는 피 흘리는 이에게 절하겠소마는 오늘은 돈 바치는 이에게 절하겠소.”(95면) 이 같은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현실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중도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안창호는 당대 독립운동이 여러 이념과 사조로 분열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자칫 기회주의적이고 기계적 중립에 빠지지 않도록 운동의 과제와 목표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설정하려 했다.
그는 대중을 하나의 추상적이고 단일한 수준의 집단으로 보지 않고 각자 수준과 역량이 다른 존재임을 인정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민족혁명이란 운동가 각자가 서로의 차이나 결함에 집착하지 않는 통합의 깃발이었고, “정치적 혁명이나 경제혁명이나 종교혁명 같은 부분적 성질에 있지 않고 우리 민족으로는 누구나 다 같이 어떤 혁명분자나 다 같이 힘 쓸 결심을 해야 할 것”(251면)이었다. 여기서 안창호가 주창한 대공주의(大公主義)가 현대의 ‘변혁적 중도주의’와 맞닿는 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공주의란 일상의 소소한 저항에서부터 전 세계 공동의 변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연계된다는 주의이다. 당시 일제 치하의 현실에 빗대어 말하자면, 대공주의란 “우리의 주권 회복과 모범적 공화국 건설이 민족적 요구에 따른 당위일 뿐 아니라 미·중·일·러가 교차하는 한반도를 세력균형의 완충지대로 만듦으로써 ‘동양평화’의 초석을 놓고 세계평화를 바룬다는 발상”(28면)이라고 편저자 강경석은 말한다. 이 같은 발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급진 노선들과 체제 순응적인 개혁 발상에서 벗어나 각 시대 현실에 알맞게 대처하고 다수의 대중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와 동일한 맥락이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안창호에게 한반도 독립은 그에 뒤이은 신공화국 건설과 더 나아가 동양평화,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첫번째 단계의 임무이다. 이 같은 장구한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방침 또한 추상적이고 급진적이어서는 안 되고 구체적이고 점진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가 벌인 첫번째 독자적 활동이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였고 그 학교의 이름이 점진(漸進)학교라는 점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점진적으로 변혁해가야 한다’는 안창호의 주장을 오늘날에 따라본다면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제로부터 독립하긴 했지만 남북으로 갈라져 산 지 어느새 80년에 가까워졌다. 즉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한반도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요, 뒤이어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이뤄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편저자가 서문의 머리 부분에 쓴 것처럼, 안창호의 편지와 일기를 제외하면 그는 직접 글을 쓰지 않고 대부분 자신의 사상을 다수의 대중 앞에서 발표했다. 그의 연설은 강연 주최 측의 서기를 통해서나 언론사 취재록으로 남겨졌다. 다시 말해 그의 말을 누가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문체와 기록이 달라지는 터라 ‘단 하나의 원전’을 하나의 기준으로 잡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안창호의 최초 기록 문헌을 기준으로 삼아 극히 최소한의 윤문을 가했다. 또한 국한문체 기록의 시대적인 차이, 국내 매체와 해외 매체의 표현·용어 차이 등을 추가로 고려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안창호가 자신의 담대한 이상을 거침없는 언변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연설문 행간 곳곳에서, 100여년 전 한반도와 중국, 미국 등지에서 망국의 설움을 달래면서 세계 평화를 바랐던 동포들의 마음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편자의 말처럼 “도산의 삶과 사상을 만나는 일은 가장 낮은 곳에서 솟아오른 가장 원대한 이상과 마주하는 경험”이다. 이제, 안창호를 다시 제대로 읽을 때이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라는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나 최제우, 박중빈의 개벽사상 등으로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안창호를 포함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 저자소개
저자 : 안창호
20세기 초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독립운동가. 청년 시절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설립했다. 귀국 후 1907년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진흥했다. 1913년 미국에서 흥사단을 재창설하고, 3·1운동 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세계를 무대로 해외 한인의 조직활동을 진작했으며 국내외 운동노선을 통합해 민족혁명을 이루고자 평생을 바쳤다.
엮음 : 강경석
문학평론가이자 근대문학 연구자.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비평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겸 세교연구소 기획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리얼리티 재장전』 『개벽의 사상사』(공저)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