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한국 여성문학 선집』(전 7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엮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여성주의와 여성문학 연구를 지속해 온 학자들이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서술을 목표로 2012년 결성한 모임으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 첫 번째 프로젝트이자 성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왜 우리에게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전복적인 여성문학사, 『노튼 여성문학 앤솔러지』 같은 여성문학 선집이 없는가?”라는 한 가지 명확한 의문과 강렬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선집은 문학사 서술의 출발점이다. 텍스트 선별이 완료된 이후에야 문학사 서술 작업과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에서는 여성문학사 서술의 시작조차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사)은 남성 중심의 문학사와 정전을 굳건하게 구축해 왔기에, 여성문학은 전통을 이어왔으면서도 그 역사적 계보와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 작가의 ‘저자성’과 여성문학의 ‘문학성’은 언제나 의심받으며 주류 문학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 여성문학을 문학사에 온전히 기입하기 위해 여성의 관점으로 독자적인 여성문학사가 서술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여성문학사 서술을 위해 세운 기준은 다음과 같다. 시대로는 근대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까지 역사적 전환점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문학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 담았다. 시, 소설, 산문, 희곡 등 기존의 제도화된 문학 형식만이 아니라 잡지 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노동 수기처럼 여성문학의 발전에 토대를 이룬 글쓰기라면 장르의 제한 없이 담았다.
■ 목차
1권 여성문학의 탄생 ― 1898년~1920년대 중반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여성문학의 탄생, 조선의 배운 여자들과 개인의 등장 14
김 소사, 이 소사 28
부인회 애국가 30
여학교설시통문 34
신소당 38
평안도 안주 여노인 신소당은 39
진주 부용 형 전 사례서 43
김명순 47
유언 49
저주 51
도라다볼 때 55
두 애인 125
김일엽 192
서시 194
자각 196
창간사 225
우리 신여자의 요구와 주장 229
나혜석 235
인형의 가 237
경희 242
김월선 314
창간에 제하야 316
엮은이 소개 320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322
2권 계급·민족·여성의 교차 ― 1920년대 후반~1945년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여성과 식민지 현실의 교차 ― 계급·민족·여성성 16
김일엽 35
나의 노래 37
나혜석 39
이혼고백장 41
장정심 129
행주치마 131
김말봉 133
찔레꼿 135
박화성 144
추석전야 146
찾은 봄·잃은 봄 189
강경애 209
소금 211
인간 문제 267
최정희 280
지맥 282
백신애 337
꺼래이 339
모윤숙 359
조선의 딸 361
노천명 363
자화상 365
남사당 367
송계월 369
내가 신여성이기 때문에 371
여인 문예가 크릅 문제― 최정희 군의 「선언」과 관련하야 375
이선희 379
도장 381
임옥인 395
후처기 397
지하련 414
산길 416
임순득 437
여류 작가의 지위― 특히 작가 이전에 대하야 439
엮은이 소개 456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458
3권 전쟁과 생존 1945년~1950년대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해방과 전쟁 ― 일제강점기 여성문학의 해체와 한국 여성문학의 형성 14
고명자 39
자주독립과 부녀의 길─부녀위안의 날을 마지면서 40
최정희 48
풍류 잡히는 마을 50
끝없는 낭만 86
노천명 97
적적한 거리 99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100
이선희 102
창 104
지하련 136
어느 야속한 동족이 잇서 138
도정 140
이영도 167
맥령 169
정충량 170
여성의 지위와 현실 172
한무숙 178
허물어진 환상 180
감정이 있는 심연 197
강신재 222
안개 224
해방촌 가는 길 248
노영란 277
밤의 악장 279
홍윤숙 281
생명의 향연 283
박경리 286
표류도 288
불신시대 300
김남조 332
목숨 334
한말숙 336
신화의 단애 338
엮은이 소개 354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357
4권 세대교체와 저자성 투쟁 1960년대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여성문학의 세대교체와 성숙 16
이영도 38
진달래―다시 4·19 날에 40
박경리 42
쌍두아 44
사소설이의 83
김남조 89
겨울 바다 91
박순녀 93
아이 러브 유 95
어떤 파리 123
이정호 154
잔양 157
구혜영 179
은 빛깔의 작은 새 181
함혜련 201
내 음악이 멎을 때까지 203
강인숙 205
여류문학의 새 지표 207
김후란 216
거울 속 에뜨랑제 218
전혜린 220
목마른 계절―이십 대와 삼십 대의 중간 지점에서 222
손장순 231
한국인 233
정연희 245
정점 247
강계순 280
꽃병 1 282
허영자 284
자수 286
녹음 288
박시정 290
날개 소리 292
한국여류문학인회 320
창간사 322
여류문학 50년을 회고한다 325
서문 346
엮은이 소개 348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350
5권 개발 레짐과 여성주의적 각성 1970년대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개발독재기의 젠더 통치와 대안적 여성 주체의 등장 14
김자림 32
화돈 34
박완서 48
닮은 방들 51
손장순 75
우울한 빠리 77
노향림 108
어떤 죽음 109
서영은 110
먼 그대 112
신달자 140
그리움 142
강은교 144
자전 1 146
비리데기의 여행노래 148
빈자일기― 구걸하는 한 여자를 위한 노래 158
문정희 160
새떼 162
오정희 163
중국인 거리 165
어둠의 집 199
김승희 221
그림 속의 물 223
태양미사 227
석정남 230
인간답게 살고 싶다 232
불타는 눈물 238
송효순 242
서울로 가는 길 244
장남수 266
빼앗긴 일터 268
엮은이 소개 286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288
6권 운동으로서의 글쓰기 1980년대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운동으로서의 글쓰기와 여성 의식 ― 민중 · 민족 · 젠더의 교차 16
박완서 34
엄마의 말뚝 1 37
엄마의 말뚝 2 98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158
홍희담 179
깃발 181
김채원 183
겨울의 환 185
윤정모 251
고삐 1 253
정복근 262
덫에 걸린 집 264
문정희 321
황진이의 노래 1 323
작은 부엌 노래 325
고정희 327
상한 영혼을 위하여 329
우리 동네 구자명씨― 여성사 연구 5 331
이경자 333
둘남이 335
강석경 363
밤과 요람 365
김향숙 429
종이로 만든 집 431
김승희 495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 497
불의 딸과 태양숭배 500
최승자 516
일찌기 나는 518
Y를 위하여 520
김혜순 522
기어다니는 나비 524
딸을 낳던 날의 기억 ― 판소리 사설조로 526
양귀자 528
원미동 시인 530
차정미 555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10 ― ‘정신대’를 생각한다 556
최명자 559
코 561
정명자 563
잊지 못할 1978년 2월 21일 565
황인숙 569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571
김경미 573
야간여고 수업 575
허수경 577
폐병쟁이 내 사내 579
아버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 580
여성평우회 582
여성문화 큰잔치 연희마당 584
또 하나의 문화 648
좌담 ‘또 하나의 문화’를 펴내며 650
여성 673
『여성』 1집을 내면서 674
여성의 눈으로 본 한국문학의 현실 678
여성운동과 문학 747
책을 내면서 748
엮은이 소개 752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754
7권 성차화된 개인과 여성적 글쓰기 1990년대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성적 주체로서 개인의 발견과 여성적 글쓰기의 실험 16
천양희 38
바람 부는 날 40
최승자 42
하안발 5 44
김언희 45
얼음여자 47
김정란 49
내가 아무렇게나 죽인 여자 51
이연주 53
매음녀 1 55
최윤 57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59
하나코는 없다 145
김혜순 178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180
여자들 183
엄인희 186
그 여자의 소설 188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240
최정례 255
햇빛 속에 호랑이 257
노혜경 259
레이스마을 이야기 ― 할머니의 앞치마 261
이남희 263
플라스틱 섹스 265
은희경 308
새의 선물 310
그녀의 세 번째 남자 334
박서원 402
엄마, 애비없는 아이를 낳고 싶어 404
마리아가 목수의 아들 예수에게 주는 메시지 407
최영미 410
서른, 잔치는 끝났다 412
전경린 414
염소를 모는 여자 416
공선옥 480
목마른 계절 482
공지영 515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17
무엇을 할 것인가 527
김인숙 552
칼날과 사랑 554
신경숙 556
배드민턴 치는 여자 558
외딴방 587
허수경 597
혼자 가는 먼 집 599
불우한 악기 600
배수아 602
여점원 아니디아의 짧고 고독한 생애 604
이수명 649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 651
나희덕 653
어린것 655
하성란 657
치약 659
한강 683
내 여자의 열매 685
송경아 686
바리―길 위에서 688
엮은이 소개 708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710
■ 출판사서평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계보를 이해하는 최초의 기준!
민음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
『한국 여성문학 선집』(전 7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엮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여성주의와 여성문학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서술을 목표로 2012년 결성한 모임으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 첫 번째 프로젝트이자 성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왜 우리에게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전복적인 여성문학사, 『노튼 여성문학 앤솔러지』 같은 여성문학 선집이 없는가?”라는 한 가지 명확한 의문과 강렬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문학사 서술은 여성주의 운동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문학사 탈구축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학사 탈구축 작업은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적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문학사에 깃든 국민·국가, 남성·엘리트, 문학중심주의 등을 걷어내고 여성과 소수자 문학을 문학사에 반영하자는 움직임이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문학사 탈구축 작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여성문학사 서술은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남성 중심의 문학사 서술이 굳건하게 형성되어 오는 동안, 여성문학사는 서술을 시작할 텍스트 선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문학은 그 전통을 이어 왔음에도 역사적 계보와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오랜 역사 동안 여성 작가의 ‘저자성’과 여성문학의 ‘문학성’은 의심받았으며, 주류 문학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 오늘 등장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한국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동안 문학사에 없던 여성의 기준과 관점으로 근현대 한국 여성문학의 계보를 집대성하고, 제도 문학 중심의 구분에서 벗어나 장르 제한 없이 여성 지식 생산과 글쓰기 실천을 아카이빙한 최초의 작업이다.
‘최초’는 ‘다음’을 약속한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한국 여성문학 선집』 이후 본격문학과 국민문학을 넘어 대중문학과 퀴어문학, 디아스포라문학을 포괄하고 해외 학회와 협업한 다양한 선집을 후속 과제로 남겨 두었음을 밝히며, 시대마다 문학 공동체마다 다시, 그리고 새롭게 쓰일 새로운 문학사의 탄생을 예고한다.
■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문학사는 가장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문학의 영역이다.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고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문학 교육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문학사 교육’이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로 그 이유로 과거 국가 권력은 문학사를 ‘민족’과 ‘시민’을 양성하는 첫 번째 도구로 삼았으며, 또한 같은 이유로 문학사는 민주화 이후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서구로부터 시작해 2000년대 한국 사회에도 민족과 이념 중심의 ‘남성 중심의 문학사’를 해체하고 새로 쓰는 ‘문학사 탈구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성과는 미약했다. 새로운 문학사 서술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문학사는 문학 연구와 교육 모두에서 ‘죽은 지식’으로 외면당해 왔다. 그 역사 끝에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등장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동안 문학사를 떠받친 문학, 역사, 학문을 둘러싼 오랜 기준들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의심하고 새로이 들여다보며 완성한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시작이다.
■ 시대가 만들고, 시대를 만든 작품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최초’라는 단어가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원칙’으로 작용한 책이다. ‘여성문학의 진일보를 이룬 작품을 집대성한다.’는 목적과 학술적·역사적 근거와 의미를 가진 작품을 장르 구분 없이 발굴하고 소개한다는 대원칙 아래, 책에 대한 다른 원칙들이 세워졌다. 작품뿐 아니라 ‘학술’과 ‘역사’까지도 여성적 관점으로 다시 보고,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공기까지도 충실히 담을 것이라는 규칙들이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까지의 시대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구분하고,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문학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 담았다. 시, 소설, 산문, 희곡뿐 아니라 잡지 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노동 수기 등 제도화된 문학 형식 밖에 있다는 이유로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못했던 다양하고 자유로운 ‘여성 글쓰기’를 총망라했다.
■ 한국 여성해방 100년의 기록
기존 문학사에서는 나혜석의 「경희」가 《여자계》에 발표된 1918년을 여성문학의 원류로 보았다면,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보다 20년 앞선 1898년 「여학교설시통문」을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본다. 이 글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여성이 신문에 투고해 발표한 글이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이 글을 “근대 매체인 신문을 통해 공적 담론인 ‘선언문’의 형식으로 페미니스트 집합 의식을 발표한 최초의 글”(1권, 시대 개관)이라 평가하며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짚는다. 「여학교설시통문」을 발표한 이듬해 이 글의 저자들이 한국 최초의 여학교를 설립하고, 그로부터 20년 후 한국 여성문학의 원류인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한국 여성문학이 만들어 온 여성해방의 방향성과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여성의 글쓰기와 삶은 앞선 여성의 글을 읽고 다음 여성의 삶을 상상하는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공명하고 움직이며 이루어졌다. 시대마다 형태를 달리하며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과 그에 따라 순응하고 저항하며 만들어간 여성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고민하고 열망한 ‘자유’, 여성해방의 과정을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통해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학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문학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백과사전식 구성과 글로 만들어졌다. ‘시대 개관’은 각 권을 여는 글로, 다루는 작품과 시대 전반을 설명하며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작품과 작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글이다. ‘작가 소개’ 글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 문학사적 성취와 의미를 보여 주는 글로, 해당 작가를 연구해 온 연구자를 통해 방대한 자료와 엄정한 사실 검증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모든 작품은 초간본 원문을 우선해 수록했다. 이 선집이 지닌 ‘최초’의 의미와 자료적·교육적 가치를 고려해 세운 기준이다. 장편소설은 작품 소개와 주요 장면을 발췌해 수록했다.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1990년대 소설과 시를 포함해, 쉽게 구할 수 없었던 1950~1970년대 작품까지 여성문학사의 주요 작품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1권 여성문학의 탄생 ― 1898년~1920년대 중반
공론장에 올라선 배운 여자들
신여성에 의한, 신여성에 대한 글쓰기
근대 지식과 문화의 유입은 조선 여성들의 삶과 지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학교를 비롯한 근대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자각한 여성 주체들의 움직임,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등장, 개화 계몽의 열기로 꽉 찬 공론장의 부상은 여성의 읽기와 쓰기를 이끈 요인들이다. 이 시기 공적 담론은 신문·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를 통해 유포되었고, 이와 같은 공론장에 글 쓰는 여자가 출현한 것은 여성문학사의 기원을 이루는 중요한 장면이다. 특히 《여자계》(1917), 《신여자》(1920), 《신여성》(1923) 등 여성 매체는 논설, 독자 투고뿐 아니라 수필, 소설, 시 등 문학적인 글쓰기를 훈련하는 장을 마련했다. 여성의 권리와 각성, 자유연애에 대한 열망을 담은 이 시기의 작품들은 민족이나 가부장적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개인의 목소리를 근대적 문학 양식에 담은 신여성에 의한, 신여성에 대한 글쓰기다.
2권 계급·민족·여성의 교차 ― 1920년대 후반~1945년
식민 지배 아래 깊어 가는 분열과 갈등,
그 참상을 묘파한 여성적 리얼리즘의 탄생
1930년대는 여성문학이 식민 현실을 젠더의 시각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려 낸 시기였다. 난민이나 유민이 된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공감과 연대의 윤리로 포착하는가 하면 남성 중심의 가족 로망스와 윤리를 내파했다. 남성 중심의 문학장이 여성에게 부과한 ‘여성적’ 글쓰기라는 틀과 ‘여성성’의 개념을 영리하게 전유해 여성성, 여성적 글쓰기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석자와 가치 부여자에 따라 유동적이고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1930년대는 ‘주의자’ 여성부터 여성성을 연기하는 여성까지, 민족 혹은 집단의 ‘대표자’ 여성부터 민중 여성까지, 신여성부터 구여성까지 포괄하면서 근대와 전근대, 계급과 민족 그리고 성이 착종하고 교차하는 식민 현실을 풍부하게 담아낸 여성문학 형성기로 자리매김했다.
3권 전쟁과 생존 1945년~1950년대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
여성들의 생존기
해방부터 1950년대까지는 한민족이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두 개의 나라로 쪼개진 분단의 시작점인 시기이다. 한국사의 이와 같은 흐름은 여성의 인간(시민)적 자유를 턱없이 제한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여성해방의 의제는 먼 미래로 유예되었고, 남성을 민족적 개발 전사이자 방위군으로 내세운 초남성적 근대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에 이르면 여성들은 지극히 사인화된 존재로 위치 지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 여성 주체들은 근대화가 본격화하기 이전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가부장제를 심문한다. 가정을 박차고 나온 ‘노라’와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는 여성 혁명가, 모 가장, 전쟁미망인, ‘양공주’ 등 가부장제의 지정석을 벗어난 여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4권 세대교체와 저자성 투쟁 1960년대
혁명의 열기 속에서 점차 또렷해지는
‘자율적 개인’에 대한 자각과 욕망
1960년대는 4·19혁명으로 ‘시민’이 등장하면서 공론장의 지각 변동이 이루어진 때이다. 한국문학은 서구 시민사회의 욕망과 관념이 투영된 공공적 가치로서 그 위상을 갖게 되었다. 문학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대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주체로 여겨진 ‘시민’은 ‘모든 인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신진 여성 작가들은 4·19혁명에 의해 발견한 자율적 개인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가부장제의 여성성 규범을 내파하는 여성 성장을 도모하고, 냉전 권력의 금기를 깨는 불온한 기억과 관찰의 주체를 자임하며 자기 안의 퀴어한 여성에 의지해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사랑을 포기하는 대신에 개인이고자 하는 여성, 상실감과 그리움으로 냉전 권력의 토대를 침식하는 이방인,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척하지만 광기의 힘을 빌려 반역을 도모하는 여성, 작가로 인정받고자 하는 여성 등은 1960년대 여성문학사의 문제적 주인공들이었다.
5권 개발 레짐과 여성주의적 각성 1970년대
개발독재 정치로 시작한 중산층의 시대,
속물적 욕망의 고발과 억압받는 몸의 글쓰기
1970년대 여성문학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여성문학이라는 범주와 육체가 구성된 시기이다. 일종의 지도 그리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직 성격적 특성이나 정체성이 확립되기 이전이지만 여성 전업 작가가 등장하고, 중산층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여성 경험의 문학화가 가능해졌으며, 여성적 장르와 매체가 형성되었다. 또한 새로운 글쓰기 주체로 등장한 여성 노동자와 민중적 글쓰기의 도전도 앞으로 여성문학의 범주가 어떻게 구성될지를 보여 주는 현상이다.
국가주의적 개발독재 시기는 노동의 도구로 국민을 재구성하는 강력한 계몽의 시대였다. 히스테리적 글쓰기, 육체의 언어로 쓰인 시, 일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을 다룬 여성 노동자의 글쓰기로 여성문학이 정립된 것은 국가주의적 가부장제의 급속한 강화에 저항하는 인간성의 호소와 관련이 있다. 취약한 신체와 인간적 경험을 배제하는 체제에 저항하고 이를 문학화하는 글쓰기 전략이 여성문학의 특성이 된 것이다.
6권 운동으로서의 글쓰기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 사이에서 교차하는 문학
1980년대는 여성이 공적 영역의 주체로 성장하고 이를 글쓰기로 재현한 시기로 여성문학도 민족·민중문학의 큰 흐름 속에서 창작되었다. 운동권 여학생, 여성 노동자, 중산층 여성 등 다양한 여성 주체의 문학적 재현이 이루어졌고, 노동 수기, 마당굿 등 노동현장과 연결된 민중 여성들의 발화가 문학장으로 나오며 다양한 장르의 확산이 이루어진 점이 이 시기의 성과다. 페미니즘 대중 장르의 유행과 소설, 연극에서 여성 독자와 관객의 증가도 두드러진 문학 현상이었다. 페미니즘 문학의 대흥행은 가부장제에서 탈출구를 찾던 여성들의 욕망이 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 장르로 비껴 나 있었던 여성들의 가부장제 비판은 1990년대로 이어지면서 여성문학의 중심 흐름을 이끌게 된다.
7권 성차화된 개인과 여성적 글쓰기 1990년대
문학사의 주변에서 중심부로 진입한 여성문학
1990년대 여성문학은 한국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주변적 위치를 넘어 문학장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여성 글쓰기의 실험은 시, 소설, 희곡을 망라하는 다양한 장르에서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1980년대 운동권 문학에 나타났던 광장의 민주주의를 방의 민주주의와 접속시키고 젠더화된 개인으로서 여성의 자유를 실험한 것은 이 시기 여성문학의 지향점이자 성취였다. 그러나 젠더화된 개인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로막는 사회적 힘들과의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1990년대 한국 여성문학은 협소한 계급적·민족적 이데올로기에 갇혔던 정치성 범주를 젠더적 시각에서 확장했으며, 이를 통해 여성적 글쓰기를 실험하고 일정 정도 소수자적 문제의식을 포용해 들였다. 어느 때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여성문학의 결실은 이런 시각의 확장에서 비롯되었다.
■ 저자소개
엮음 : 여성문학사연구모임
남성 중심의 문학사 서술에 의문을 품고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유산을 여성의 시각으로 정리하기 위해 2012년 결성된 모임이다. 국문학 연구자 김양선, 김은하, 이선옥, 영문학 연구자 이명호, 이희원으로 구성되었고, 시 연구자 이경수가 객원 에디터로 참여했다.
- 김양선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이며, 한국여성문학학회 회장과 《여성문학연구》 편집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 장의 형성』, 『1930년대 소설과 근대성의 지형학』, 『근대문학의 탈식민성과 젠더정치학』, 『경계에 선 여성문학』 등이 있다.
- 김은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국여성문학학회 회장이며, 《여성문학연구》 편집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개발의 문화사와 남성 주체의 행로』 등이 있다.
- 이선옥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이며, 《실천문학》 편집위원, 한국여성문학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태권V와 명랑소녀 국민 만들기』, 『한국 소설과 페미니즘』 등이 있다.
- 이명호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 전공 교수이며, 경희대학교 글로벌인문학술원 원장, 한국비평이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안티고네를 두려워하는가』, 『트라우마와 문학』 등이 있다.
- 이희원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석사, 텍사스 A&M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이며,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영미 드라마 속 보통 여자들』 등이 있다.
- 이경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며, 한국시학회, 한국여성문학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한국 현대시와 반복의 미학』, 『불온한 상상의 축제』, 『춤추는 그림자』, 『이후의 시』, 『백석 시를 읽는 시간』 등이 있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