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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밑줄긋기
P.90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할 때에는 먼저 자기의 분별심을 바쳐라.
금강 삼매경에 "다른 사람을 제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분별을 쉬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의 분별을 쉬게 하려면, 우선 자신의 분별이 쉬어야 한다.
제 분별심은 가만히 접어 두고 다른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은, 자기의 때문고 더러운 분별 덩어리를 상대방에게 억지로 들씌우는 것과 같다.
알라딘 책소개
백성욱 교수의 가르침을 담은 책으로, 불교 법문과 불가 여담을 모았다.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법문이나 여담 등 기억남는 말들을 정리하여 엮었다.
목차
- 들어가기 전에
1.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2.
마음에 그리는 대로 되어진다
3.
아상은 몸뚱이 착이며 음탐심이다
4.
몸으로 밝은 자리를 향해 복 지어야 지혜가 밝아진다
5.
그 한마음 어떻게 닦나?
6.
집중과 무심은 같지 않다
7.
지금 여기서
8.
삶을 풍요롭게 하자면
9.
밖에서 찾지 말고 그대 마음을 들여다보아라
10.
왜 '미륵존여래불' 하나?
11.
불가사의한 세계
12.
모든 것을 부처님께 바쳐라
13.
괴로움의 근본 '나'를 벗어나는 가르침 금강경
- 백성욱 선생님에 대하여
- 엮고 나서
저자/역자 소개
지은이 : 백성욱
1897년 8월 19일(음력) 종로구 연건동에서 출생했다.
만 3세에 아버지를 여읜 데 이어, 9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정릉 봉국사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 13세에 최하옹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전국 주요 사찰의 불교전문강원에서 8년에 걸쳐 공부하다, 1917년(20세)에 서울로 올라와 동국대학교 전신인 불교중앙학림에 입학했다.
1919년 3월 1일, 한용운 스님의 명을 받아 중앙학림 학생들을 인솔하여 탑골공원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했으며, 이후 남대문과 대한문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대대적인 검문과 체포가 시작되자 상해임시정부를 찾아가 독립운동을 했으며, 《독립신문》 제작에 참여했다.1921년, 24세에 충정공 민영환의 아들 범식·장식 형제의 지원을 받아 그들과 함께 1년 동안 프랑스 북부 보베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를 공부했다.
이듬해,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의대에서 공부하던 이미륵을 만나 철학과 한스 마이어 교수를 소개받았다.
시험에 통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여 1923년 가을부터 마이어 교수를 지도교수로 <불교순전철학佛敎純全哲學> 박사학위 논문 작성에 매진했고, 이듬해 5월에 초고 완성, 9월에 인준받았다.
1925년 9월, 28세에 귀국하여 신문과 잡지에 시와 논문, 에세이 등을 기고하고, 각종 토론회와 법회에 나서는 등 불교 혁신운동에 참여하다, 1929년(32세) 늦여름, 불교전수학교(구 불교중앙학림) 교수직 등 모든 걸 내려놓고 금강산에 입산, 장안사 보덕암에서 수행을 시작했다.
수행 중 혜정 손석재 선생의 권유로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 함께 가서 100일 기도 정진했으며, 1930년부터 장안사 안양암에서 1일 1식 하며 ‘대방광불화엄경’ 염송 수행을 시작했다.
안양암 3년 정진 중 얻은 바가 있어, 장안사 지장암에서 손혜정 선생과 함께 근대 의 수행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며 회중수도會衆修道를 시작했다.
조국 독립을 기도하고, ‘대방광불화엄경’을 염송하면서 7년여 동안 500여 명의 제자를 지도했다.
1938년(41세) 4월, 지장암 수도 중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목되어 경남 의령경찰서로 연행, 50여 일간 취조받다가 석방되었으나, 일제의 압력으로 하산하게 되었다.이후 서울 돈암동과 치악산 상원사 동굴에서 정진 수도하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애국단체인 중앙공작대를 조직하고 민중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상해임시정부 시절 인연이 있던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한 건국운동에 참여했으며, 1950년(53세) 제4대 내무부장관, 1951년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했다.
1953년 7월, 부산 피난 중 동국대학교 제2대 총장에 취임했으며, 이후 5·16 군사정변으로 동국대학교에서 물러나게 된 1961년 7월까지 중구 필동에 대학교 교사를 건립하고 시설·학사·교수 등 다방면에 걸쳐 동국대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금강삼매경론》 《화엄경》 ‘인류 문화사’ 등을 강의했으며, 《고려대장경》 영인 작업에 착수, 총 48권의 현대식 영인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1962년, 65세에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의 야트막한 산을 개간, ‘백성목장白性牧場’을 경영하면서 《금강경》을 쉽게 강의하고, 인연 있는 후학을 지도했다.
1981년 8월 19일(음력), 출생일과 같은 날, 84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후학들이 금강경독송회, 청우불교원 금강경독송회, 바른법연구원, 백성욱 박사 교육문화재단, 백성욱연구원, 여시관如是觀 등을 세워 가르침을 잇고 있다.
엮은이 : 김원수
2018년부터 현재까지 BTN 불교TV에서 〈김원수 법사의 내 안의 선지식, 금강경〉이 절찬리에 매주 방영 중이다.
저자의 해설은 단순한 경전의 해석이 아니라, 생활에서 평생 실천한 체험이 녹아있으며 누구나 실생활에서 바로 따라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저자는 금강경 가르침을 사회생활뿐 아니라 과학적인 난제에도 접목하여 뛰어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오로지 밝은 스승 백성욱 박사님을 모시고 전일 출가(1967~1971년)하여 금강경을 수행한 공덕이라고 한다.
이에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 생활불교로 불교의 중흥을 도모하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기를 발원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학력과 경력서울대학교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학군장교로 제대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 취득, 홍익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로서 정년 퇴임하였다.
? 불교 신행과 수행 지도 ? 금강경 수행 프로그램 : 매주 일요 정기법회, 매일 자시子時 주경야선 가행정진, 매주 2박3일 주말 출가 등 실질적이고 알차게 운영 중이다.? 전 재산을 희사하여 세 개의 비영리 법인을 설립, 진정한 무소유인이 되었다.
? 무료 급식을 2004년부터 현재까지 시행 중이다(연인원 40만 명 이상).? 저서 : 『우리는 늘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다』와 영한판 『THE CREATORS』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