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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중국 상해의 민간단체와 국가의 관계를 연구한 책. 당시의 사회단체와 정부의 관계, 민간단체의 정치ㆍ사회활동의 성격이 어떻게 변해갔는가를 추적하면서, 남경 국민정부가 민간단체를 통제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을 탐구하였으며, 이러한 모든 과정에 동향네트워크의 문제를 핵심 연결고리로 설정하였다. 또한 남경 국민정부의 국가건설과 동향의식 혹은 지역 정체성 사이의 상호관계, 남경정부가 생각한 민간단체의 역할, 민간단체와 국가권력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통해 남경 국민 정부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했다. 전반부에서는 상해의 공간구성과 특색, 그리고 그 공간에서 발생했던 문제와 민간단체의 정치 및 사회활동을 살펴본다. 후반부에서는 국민정부에 의한 민간단체의 재편과 통제, 그리고 국민정부 시기 상해 사회단체의 기능과 위상을 다루고 있다. |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 21세기에 다시 쓴 간행사 책머리에/ 새로운 변화와 모험을 꿈꾸며 서론 1부 1920년대 상해의 공간구성과 행정당국 Ⅰ. 상해의 상권과 공간구성 - 상해 공간구조의 형성/ 상해의 상권/ 지역사회의 분화와 분절 Ⅱ. 상해의 사회문제와 행정당국 - 상해의 사회문제/ 행정당국의 대응과 한계/ 사회문제에 대한 민간단체의 대응 2부 1920년대 상해 민간단체의 사회적 기능과 정치활동 Ⅰ. 민간단체와 동향망 - 이주민과 동향네트워크, 동향단체/ 동향네트워크에 따른 분열과 갈등/ 동향네트워크에 기초한 직업단체와 '공익' Ⅱ. 1920년대 후반의 정치운동과 동향단체 - 북벌과 상해 사회의 동요/ 상해 자치운동과 동향네트워크/ '지역'자치운동과 국민혁명/ 자치시 건립과 상해 사회의 내부분열 3부 1920~30년대 상해 민간단체의 재편과 수직적 통치질서의 형성 Ⅰ. 민중운동과 중국 국민당 - 국민당의 국가건설과 민생주의/ 당 주도의 계급조화/ '혁명의 적'과 근대화 Ⅱ. 중국 국민당의 '혁명적 건설'과 상회 - 상민운동결의안과 상해 상민협회/ 총상회의 참정 요구와 '훈정'의 마찰/ 상회 통합을 위한 모색과 갈등 Ⅲ. '지도와 감독'하의 시상회 - 시상회와 공상동업공회의 결성/ 시상회의 지도자들/ 시상회의 회원 구성 Ⅳ. 노동조합의 통합과 그 한계 - 노조 조직 통일을 위한 활동/ 조사화합적 노동정책/ 산업역군으로서의 노조와 노동계 4부 1930년대 민간단체의 사회적 위상과 기능 Ⅰ. 훈정치하의 상해 사회 - 1930년대 초의 정치상황과 상해/ 민중운동의 재흥/ 공황에 따른 상계 이익의 균열 Ⅱ. 정부와 상인의 중개자 시상회 - 상거래와 시상회, 동업공회/ 정부와 시상회의 갈등과 협력/ 시상회에 대한 도전과 응전/ 상계의 대표자 시상회의 한계 Ⅲ. 1930년대 민간단체와 상해인 - 생존과 보호막/ 상해의 노동자와 청방 결론 부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
1989년 6월 4일 중국에서는 천안문사태라는 전대미문의 민중운동 탄압이 행해졌다. 이를 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반격으로 본 서구의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사회를 ‘시민사회론’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결국 학계의 논쟁을 거쳐 중국에 순수한 서구식 시민사회가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고 결론지어졌지만, 중국사회에 존재했던 ‘시민사회’나 ‘독특한 공공영역’을 탐구하려는 논의 또한 여전히 적지 않다. 중국이 이른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자국의 경제력과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해감으로써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갈, 아니 미국을 대체할 강대국으로 평가되는 것도 중국공산당의 건재와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국가와 정부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 기능을 수행할 시민사회 영역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학계의 관심사라 할 만하다. 이 책은 1920~30년대 중국 상해의 민간단체와 국가의 관계를 연구함으로써 이같은 의문의 해소에 일조하려는 중국사 연구자 이병인(신라대 연구교수)의 학문적 시도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당시의 사회단체와 정부의 관계, 민간단체의 정치?사회활동의 성격이 어떻게 변해갔는가를 추적하는 한편, 남경 국민정부가 민간단체를 통제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을 탐구하면서, 이 모든 과정에 동향네트워크의 문제를 핵심 연결고리로 설정한다. 또한 남경 국민정부의 국가건설과 동향의식 혹은 지역 정체성 사이의 상호관계, 남경정부가 생각한 민간단체의 역할, 그리고 민간단체와 국가권력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통해서 남경 국민정부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했다. 개항 이후 상해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상공업의 발전에 따라 상업중심지, 공장지대, 거주지의 분화가 일어나고 도시공간은 불균등하게 발전했다. 또한 도시의 각종 사회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하지만 도시행정은 조계와 화계로 나누어져 사회 전체를 통괄할 만큼 효율적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 것은 자본가를 필두로 한 상해의 민간단체였다. 민간단체는 동향네트워크를 통해 힘을 모으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특히 상해에서는 타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동향의식에 따라 결성한 단체들의 활동이 왕성했다. 동향집단은 다른 집단과 경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사회의 질서를 위하여 동향집단간의 무한경쟁을 피하고 공존공영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같은 동향집단끼리의 타협과 연합에 의한 공존의 모색은 하나의 동향방을 넘어서서 다른 동향집단과 연합한 단체의 결성을 가능하게 했다. 상해의 민간단체는 내면에서는 동향방이나 동향네트워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외면적으로는 근대적인 이념과 조직으로 사회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섰던 것이다. 국민정부 성립 이전 상해에서는 민간단체들이 사회의 중요문제를 해결했고, 그 바탕에서 주민들을 동원하고 정치?사회활동에 참여시키는 데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 동향네트워크였다. 국민혁명으로 군벌을 타도하고 국민정부를 수립한 국민당은 강력한 근대국가의 수립을 통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한편 시급히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분열적인 속성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개인주의, 계급투쟁, 낙후한 생각은 국가의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제거되어야 했다. 따라서 국민당과 정부는 동향 집단이나 동향네트워크를 따라 분열 갈등하던 기존의 모습을 일소하고 난립해 있던 민간단체를 정리하려고 했다. 당연히 계급투쟁은 허가되지 않았고, 동향감정에 따른 단체의 결성은 부정되었다. 그리고 한 지역에 업종별로 하나의 단체만이 허가되었다. 상해시에는 하나의 상회와 업종별로 하나의 동업공회만이 허락되었고, 노동조합 또한 산업별로 하나의 단체로 통합하도록 강행되었다. 이로써 정부의 허가를 받은 민간단체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대신에 정부의 힘을 배경으로 해당 영역에서 유일하게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았다. 민간단체에는 소속 회원의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의 의견을 소속회원에게 전달하고 집행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 그리고 상인단체와 노동자단체 같은 이익집단간의 갈등을 조절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당과 정부가 담당하도록 기획되었다. 당과 정부의 지도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상해 시상회와 동업공회는 1930년대에 국가와 상인을 연결하는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시상회와 동업공회는 상인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정부를 도와 행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면서 공과 사가 겹쳐진 영역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상회와 노동조합의 조직 통합과정에서 몇가지 문제도 나타났다. 상인들은 여전히 동향의식에 따라 단체의 결성을 시도했고, 업무의 차이를 이유로 세분화된 동업공회를 조직하면서 국민정부가 업종별로 하나의 동업공회로 통합하려던 조직체계를 이완시켰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동향방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살아 있었다. 더군다나 조계의 존재, 공황에 따른 생존경쟁의 심화, 거래선의 차이에 따라 생긴 이익의 차이는 시상회가 상인들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각자 따로 움직였다. 하지만 상회와 동업공회는 소속회원을 통제할 강제 집행권이 없었고, 민간단체로서의 한계도 있어 상계의 유일한 대표자로서의 역할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상회와 동업공회는 스스로 정부의 통제를 요청했다.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국가주도의 통제경제론은 더욱 힘을 얻어갔으며, 그나마 남아 있던 민간단체의 역할은 더욱 줄어들어갔다. 한편 1930년대에 생존경쟁이 더욱 심해지면서, 시상회와 노동조합은 민간단체로서 소속회원의 갈등을 조정하고, 이익을 보호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결국 생존에 어려움을 겪던 상인과 노동자들은 개별적인 생존방안을 모색했고, 그 결과 국민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동향네트워크와 같은 사적인 네트워크의 재흥을 가져왔다. 상해인들은 동향네트워크를 통해 도움을 얻어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고 했다. 그런데 국민정부라는 강력한 권력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동향네트워크는 국민정부 성립 이전과 다른 양상을 드러냈다. 현실의 국가권력과 네트워크를 형성한 동향집단은 더욱 영향력을 발휘하고 융성한 반면, 그렇지 못한 집단은 약해져갔다. 동향네트워크와 동향집단의 이분화 현상이 나타났다. 결국 국민당과 국가권력이 상호 갈등을 야기하던 동향네트워크를 소멸시키려던 의도와 달리 권력은 동향네트워크를 강화하기도 하고 쇠퇴시키기도 하는 핵심변수로 등장했다. 국가권력이 오히려 동향네트워크의 연결 대상이 되었다. 한편 동향네트워크를 넓힐 가용자원이 적었던 노동자들은 주변에서 생존을 도와줄 실력자로서 깡패집단인 청방을 선택하였다. 1930년대에 수많은 노동자가 청방에 가입하여 직장에서 안정을 구하였다. 깡패집단이었던 청방은 1930년대 노동자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결국 국민당과 국민정부가 동향네트워크 등을 일소하고 민간단체를 통제하면서 단합된 힘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던 의도는 흔들렸고, 정부를 돕고 민간사회를 정부와 연결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부여했던 시상회 등 민간단체의 활동은 부분적인 성과밖에 거둘 수 없었다. 시상회는 전체 상인을 조정하고 통제하지 못하면서 유일한 대표자로서의 위상에 문제를 드러냈고 정부에 통제를 요청했다. 따라서 정부는 시상회의 역할을 생략한 채 직접 지배에 나서게 되었고, 이로써 당과 정부는 각 이익집단의 요구를 듣고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분배하는 ‘공익’ 체현자이기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 각 집단을 통제하는 억압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많아졌던 것이다. |